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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속 폴리페놀

지모프 2014. 3. 8. 14:35


거리에서 커피 전문점과는 달리 녹차 전문점은 찾기가 쉽지 않다. 왠지 녹차는 조용하고 차분한 곳에서 마셔야 되며, 시끄러운 분위기와는 격이 맞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인지 산사에서 마시는 녹차 한잔은 은은하게 퍼지는 향과 함께 기분을 가라 앉혀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녹차, 우롱차홍차는 모두 동일한 종류의 나무(Camellia Sinensis)에서 수확한 찻잎으로 만든다. 세 종류의 차 모두 건조한 찻잎을 더운 물로 우려내서 차를 만든다는 점도 같다. 찻잎을 어떻게 처리했느냐에 따라서 모습과 부르는 이름이 달라질 뿐이다. 찻잎을 취급하는 공정이 다르면 화학성분도 변하고, 우려낼 때 조건에 따라 차의 맛, 색, 향이 달라진다. 이번에는 녹차에 포함된 일부 화학물질에 대해 알아보자.

 

국내 차 산지로 유명한 보성의 녹차밭. <출처: (cc) stiickler at Flickr.com> 

 

 

녹차, 우롱차, 홍차

녹차로 차를 만드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찻잎을 볶거나 증기로 찌는 것과 같은열 처리 공정은 반드시 들어간다. 찻잎을 ‘덖는다’는 것은 찻잎을 열을 가하여 볶는(roast) 것을 의미한다. 찻잎에 포함된 산화효소의 기능은 열처리 과정에서 정지가 되며, 열에 약한 찻잎에 포함된 화학물질들의 변화도 일어날 것이다. 산화효소의 수명을 조절하면 찻잎에 포함되어 있던 화학물질의 산화 정도를 조절하게 되어 종류가 다른 차를 제조할 수 있는 것이다. 찻잎을 수확한 후부터 열처리에 도달하는 시각까지 걸리는 시간이 녹차가 가장 짧고, 홍차가 가장 길다. 따라서 녹차, 우롱차, 홍차의 향, 맛, 색이 서로 다른 것은 산화 효소에 의해 생성된 화학물질의 양과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각 차에 포함된 화학적 성분은 잎을 수확한 후에 열처리 전까지 걸린 시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일단 제조된 차는 보통 70-80°C 정도의 물로 약 2-3분 우려내서 마신다. 우려낼 때 물의 온도와 우려내는 시간도 향과 맛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연히 물에 포함된 금속 이온, 불순물, 그리고 pH 등이 추출되는 성분과 양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것은 차의 향, 맛, 색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변수이다. 오죽하면 다도에서 물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하겠는가? 찻잎에 포함된 수백 가지 화학물질을 어떻게 추출했는지에 따라 맛이 다를 것이며, 사람마다 맛에 대한 감도와 기준이 다른 것을 감안한다면 그야 말로 차의 맛, 향, 색의 조합은 무궁무진 하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차의 모습. 찻잎은 다양한 공정을 거쳐 종류가 다른 차로 변한다. <출처: Gettyimage> 

 

 

차와 폴리페놀

찻잎에는 카페인은 물론 폴리페놀을 비롯한 수 많은 식물성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찻잎에 포함된 폴리페놀의 종류 또한 다양하다. 여러 개의 페놀 분자들이 융합되거나 결합된 분자구조를 지닌 화합물 혹은 페놀의 기본 골격으로 구성된 고분자 화합물 모두를 폴리페놀이라 한다. 폴리페놀은 크게 플라보노이드(Flavonoid) 계열과 비(非) 플라보노이드 계열로 구분한다. 일반적으로 안토시아닌, 플라본(이소플라본), 플라보놀, 타닌(tannins)과 같은 이름을 지닌 화학물질들은 플라보노이드 계열로, 리그난(lignans), 스틸벤(stilbenes), 큐마린(coumarins)과 같은 이름을 지닌 화학물질은 비 플라보노이드 계열로 분류한다. 플라보노이드 계열의 폴리페놀 종류만 해도 수 천 가지가 넘기 때문에 분자 구조나 특성이 다른 화학물질을 폴리페놀이라고 해도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구별조차 힘들다. 흔히 먹는 과일이나 채소에는 적어도 수십 가지의 폴리페놀이 포함되어 있다. 과일 혹은 야채를 재료로 만든 식품이나 음식에 폴리페놀이 들어 있다는 광고를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페놀의 구조식.

폴리페놀의 한 가지인 테아플라빈의 구조식.

 

 

차에 들어있는 플라반올, 카테친과 그것의 유도체

찻잎에 포함된 폴리페놀의 한 종류인 플라반올(flavan-3-ol)이 산화되면 테아플라빈(theaflavin)이 생성된다. 테아플라빈이 많이 포함된 홍차(black tea)의 잎은 검은색이지만 더운 물에서 우려낸 홍차의 색이 붉은 색을 띠는 것은 테아플라빈이 기여한 바가 크다. 녹차에는 테아플라빈이 매우 적고, 홍차에는 많이 있고, 우롱차에는 조금 있다고 볼 수 있다. 녹차에 포함된 카테친(catechin)은 폴리페놀의 한 종류이며 플라반올 구조를 하고 있다. 플라반올의 분자 골격에 수산화기(OH)기가 4개 더 결합된 분자가 카테친이다. 카테친은 항균, 항박테리아 또는 항산화 작용을 한다고 알려진 물질이다. 차 나무는 병원체 혹은 해충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수 많은 종류의 카테친 및 그것의 유도체들을 방출한다. 즉 카테친은 차 나무가 자기 방어를 위해 사용하는 화학폭탄이다. 외부로부터 적절한 강도의 자극을 받으면 저항력이 세지는 것은 식물이나 인간이나 마찬가지 같아 보인다.

 

다양한 차의 색깔. 차에 포함된 테아플라빈(theaflavin)은 차의 색에 영향을 주는 물질 중 하나다.
좌로부터 녹차, 황차(Yellow tea), 우롱차, 홍차. 

 

 

그렇다고 녹차에 풍부한 카테친을 비롯한 많은 식물성 화학물질이 암을 예방한다는 주장은 현재까지도 효능을 정확하게 입증한 연구 결과가 거의 없기에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녹차의 종류와 우려내는 시간에 따른 화학물질의 양과 종류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알아내는 일도 매우 어려운 실험과정인데, 하물며 각각의 성분들의 역할이 어떤지, 다른 성분들과 합쳐져 있을 때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안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녹차에 포함되어 있는 카테친의 양은 경작지, 수확하는 시기, 차를 만드는 공정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찻잎에 포함된 각종 화학물질도 차나무가 자라는 토양과 기후에 의존하므로, 차를 우려내는 온도와 우려내는 시간, 물의 pH에 따라서 녹차에 포함된 카테친 및 그것의 유도체의 양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녹차에 포함된 카테친 유도체 중에는 EGCG(epigallocatechin-3-gallate)라는 화합물이 있다. 시험관에서 실험한 결과, EGCG가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발암물질을 동물에게 주입하여 의도적으로 생성시킨 각종 종양의 발달이 카테친 유도체에 의해서 억제되는 동물 실험결과도 발표되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EGCG는 혈관생성(angiogenesis)을 개시하는 신호 단백질(VEGF: vascular endothelial growth factor)의 수용체가 활성화되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암 세포가 성장하려면 암 세포끼리 연결되는 새로운 혈관이 암세포의 성장속도에 맞추어 자라야 된다. 그런데 암세포에게 새로운 혈관이 생성되는 조건이 만들어 지지 않으면 영양분 공급이 끊기어서 암세포도 버틸 재간이 없다. 결국 EGCG가 암 세포의 혈관생성을 억제하여, 암의 발달을 억제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결과 또한 어디까지나 시험관 혹은 동물실험 결과이며, 인체에 적용하려면 또 다른 차원의 연구가 진행된 후의 일이 될 것이다.

 

녹차에 포함된 EGCG(epigallocatechin-3-gallate)의 구조.
시험관(test tube)에서 EGCG는 암세포 성장을 억제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녹차 추출물의 효능?

녹차 추출물은 암세포가 이웃 세포로 침투할 때 사용하는 효소, 유로키나제(urokinase)의 활성을 억제한다고 한다. 유로키나제는 암세포의 부착, 이동, 유사 분열에 영향을 미치는 효소이다. 그러므로 항암제 연구자들은 유로키나제의 활성을 억제하는 물질에 관심이 많다. 다시 말해서 유로키나제의 활성을 억제하는 것은 암세포의 전이를 막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유로키나제는 혈전을 용해하는 효능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녹차 추출물이 유로키나제에 미치는 영향도 시험관에서 실험한 결과물이므로 너무 확대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한편 중국에서 녹차 추출물의 효능을 일부 입증할 수 있는 임상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입 안에 암으로 진전될 수 있는 병변(lesion)를 가진 사람들에게 녹차를 정기적으로 마시게 했더니, 녹차를 마신 사람들은 병변이 상당히 감소했으나, 위약(placebo)을 투여한 사람에게서는 병변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녹차에 포함된 화학 물질의 건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 중이다. <출처: Gettyimage> 

 

 

만병통치약은 아니겠지만, 녹차를 마시는 것은 즐겁다

중국과 일본에는 녹차의 종류도 많고, 많은 사람들이 차를 즐겨 마신다. 중국 혹은 일본에서 심장질환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의 수는 서양에 비해서 현저하게 적다. 또한 플라보노이드 계통의 화학물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식품을 즐겨 먹는 서구인의 심장병 발병률이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는 폴리페놀의 순기능을 대변하는 말이다. 하루에 녹차 3-4 잔을 마셔서 이들 식물성 화학물질을 섭취할 수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녹차에는 수많은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화학물질들이 집합적으로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과 효과를 알기에는 아직도 과학의 힘이 아직도 매우 부족하다. 한가지 효능을 지닌 물질을 찾아내고, 그것을 마치 만병통치약인 양 비유하는 것은 매우 비과학적인 처사이다. 어찌 됐든 녹차 한잔은 여유로운 삶을 꾸리는데 몸과 마음에 모두 도움을 주는 듯 싶다.

 

 

 

 여인형 / 동국대 화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화학과 교수이다. <퀴리 부인은 무슨 비누를 썼을까?>를 썼고, <화학의 현재와 미래>를 대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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